매년 시즌이 끝나면 열리는 시상식에서 MVP만큼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신인왕입니다. 왜냐하면 신인왕은 평생 한 번밖에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즌 MVP는 이후 본인의 노력에 따라 1번 이상 받을 수 있지만, 신인왕은 그해가 지나가면 끝나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모든 신인들에게 프로에서 기회가 주어지는게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지만 라인업에 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주전이 될지, 비주전이 될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말이죠.
요 몇년동안 최고의 신인이라 할 수 있었던 선수는 바로 키움의 이정후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는 이종범 선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는데, 당당하게 부담을 이겨내면서 이제는 이종범이 정후아빠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역대 KBO 신인 중에는 어떤 선수가 있을까요? 투수와 타자중에서 눈에 띄는 기록을 세웠던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그중 몇몇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역대 KBO 신인 최다승 TOP5
순위 | 이름 | 연도 | 팀 | 방어율 | 승&패 |
1 | 박정현 | 1989 | 태평양 | 2.15 | 19승 10패 |
2 | 김건우 | 1986 | LG | 1.80 | 18승 6패 |
류현진 | 2006 | 한화 | 2.23 | 18승 6패 | |
3 | 김시진 | 1983 | 삼성 | 2.55 | 17승 12패 |
염종석 | 1992 | 롯데 | 2.33 | 17승 9패 |
1. 박정현
신인 최다승의 주인공은 태평양에 입단했던 박정현 선수입니다. 원조 사이드암으로 불리는 선수입니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1988년에 입단하였습니다. 키는 무려 194cm였습니다. 데뷔 첫해에는 등판 횟수가 적어서 이닝이 18과 2/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뷔 2년 차인 1989년에도 신인왕 수상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현 선수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한 후, 1990시즌 13승, 1991 시즌 10승, 1992 시즌 13승을 기록한 후, 오랜 기간 부상과 씨름하였습니다. 이후 현대와 쌍방울을 거쳐, 2000 시즌에 SK로 이적했으나 32경기에 출전해 단 1승 만을 거두고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종 성적은 통산 12 시즌 1090 2/3이닝, 65승 54패 21세이브 방어율 3.45를 기록했습니다.
2. 김건우, 류현진
2등은 18승을 기록한 김건우와 류현진 선수입니다. 1986년에 데뷔한 김건우 선수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사실 없습니다. 기록으로만 찾아봤을뿐이죠. 1986년 신인왕을 차지하고 나서, 다음 해인 1987년에 12승을 기록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18승을 기록한 류현진 선수. 2006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김인식 감독의 신임을 얻고 당당하게 선발투수로서 로테이션을 소화했습니다. 201.2이닝을 던지면서 방어율 2.23, 탈삼진 204개를 기록하면서 신인 트리플 크라운 (다승,방어율,탈삼진 1위)을 달성하면서 2006년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였습니다. 여기에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죠.
류현진의 활약에 힘입어, 한화는 2006년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합니다. (아쉽게도 삼성에게 1승 1 무 4패로 준우승에 머묾)
류현진은 이후에 베이징 올림픽, WBC, 아시안게임 등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대한민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한화에서 7년간 활약한 후, 포스팅을 거쳐서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해서 현재까지 선발투수로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류현진 선수는 항상 잘해왔습니다. 부상이 있을 때만 잠시 부진할 뿐, 부상에서 회복해서 돌아오면 언제든지 제 몫을 해주는 선수가 바로 류현진 선수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투수가 누구냐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동열이라고 답을 합니다.(혹은 최동원). 하지만, 이 논쟁에서 이젠 류현진을 빼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미국, 그리고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해 왔고, 아직도 현역에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고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최고의 투수를 한 명만 뽑으라고 한다면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TOP3을 뽑으라고 한다면 류현진 선수는 반드시 들어간다고 봅니다.
토론토에서 팔꿈치 수술로 인해 1년 이상의 시간을 재활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토론토에 입단한 2020년 첫해는 단축시즌을 치렀죠. 조금은 아쉬웠던 4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FA가 된 류현진 선수입니다. 이번 스토브리그때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 궁금합니다. 한화에 복귀하기보다는 조금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해 주기를 바라봅니다.
역대 KBO 신인 최고타율 TOP5
순위 | 이름 | 연도 | 팀 | 타율 | 안타 | 홈런 | 타점 |
1 | 장효조 | 1983 | 삼성 | 0.369 | 117 | 18 | 62 |
2 | 구자욱 | 2015 | 삼성 | 0.349 | 143 | 11 | 57 |
3 | 양준혁 | 1993 | 삼성 | 0.341 | 130 | 23 | 90 |
4 | 이정훈 | 1987 | 빙그레 | 0.335 | 124 | 4 | 34 |
5 | 이정후 | 2017 | 넥센 | 0.324 | 179 | 2 | 47 |
1, 2, 3위 모두 삼성 선수들입니다. 장효조 선수를 필두로 훌륭한 신인타자들을 배출하는 곳이 삼성입니다.
1. 장효조
말이 필요 없는 선수입니다. 원조 타격기계, 장효조 선수가 역대 KBO 신인 타율 1위입니다. 0.369라는 고타율을 기록했었죠. 타율 1위뿐만 아니라, 안타, 장타율, 출루율 부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습니다. 안타개수를 보면 117개로 적어 보입니다만, 당시에는 경기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입니다.
신인들은 현재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1983년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프로야구가 1982년에 개막했기 때문에, 그전부터 실업야구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그대로 프로야구 주축선수가 되었습니다. 실업야구에서 이름을 알렸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각 프로야구 구단들의 주전 선수가 되었던 것이죠.
장효조 선수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참가로 인해서 1년 늦은 1983년에 삼성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1956년생으로 이미 27살이었습니다. 김재박, 김시진, 최동원, 이해창 선수들도 함께 1983년에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입니다.
장효조 선수는 2011년에 간암 투병 끝에 55세에 조금은 이른 나이에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이정후
이종범 선수의 아들이자, 현재 KBO리그의 최고 인기선수인 이정후 선수가 역대신인타율 5위를 기록했습니다. 타율보다 눈에 띄었던 기록은 신인최다안타 기록입니다. 1994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던 서용빈 선수의 157개를 가뿐하게 뛰어넘었습니다. 20년이 넘게 깨지지 않던 기록이었는데, 그 기록을 경신한 것입니다. 앞으로 신인 최다안타 179개를 언제, 누가 깰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정후 선수가 데뷔한 2017년 다음 해 데뷔한 천재타자 강백호 선수가 153개를 기록했지만, 이정후 선수와의 기록과 25개가 차이가 났습니다.
이정후 선수가 데뷔시즌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7 시즌 통산타율이 0.340으로, 3000타석을 소화한 선수 중 역대 1위입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활약에 따라 어쩌면 이 기록이 이정후 선수의 마지막 KBO 기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KBO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역대 타율 1위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얼마나 통할지 궁금합니다.
이정후 선수는 어떤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될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