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광복은 과연 "우리가 쟁취한 독립"이었을까요, 아니면 "외부로부터 주어진 선물"이었을까요?
역사에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만약 실행되었다면 지금의 역사를 뒤바꿨을지도 모를 ‘결정적 작전’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국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입니다.
이 글에서는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살펴보겠습니다.
📌 한국 광복군과 국내진공작전이란?
한국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0년 9월 중국 충칭에서 조직한 정규군입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와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제국에 맞서 무장 독립을 추진한 조직이었죠.
1945년, 전쟁의 끝이 다가올 무렵 광복군은 미국의 전략사무국(OSS, 현 CIA)과 협력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 일제의 패망 직전에 국내로 잠입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존재를 전국에 알리는 것.
이 작전은 ‘Project Eagle’이라는 코드명으로 진행되었고, 평안도·함경도 지역에 공작대를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 작전 준비는 어떻게 진행됐나?
OSS는 광복군 대원들을 인도로 데려가 특수전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훈련에는 공수낙하, 게릴라 전투, 통신 암호 해독, 폭파술, 생존 기술 등이 포함됐고, 실제 전투 경험을 갖춘 독립운동가들이 선발되었습니다.
대표 인물
- 박영준: 광복군 특공대장, OSS와 실무 총책
- 김준엽: 훗날 고려대 총장, OSS 훈련 참가자
- 오광선: 조선의열단 출신의 독립투사, 정예요원
- 김학무 등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국 해방의 마지막 불꽃을 지피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습니다.
국내진공작전이 실행되었다면?
만약 이 작전이 실행되었더라면, 한국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 임시정부의 정통성 인정
광복군이 실제로 조선 땅에 진입해 일본군과 교전하거나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면, 임시정부는 ‘해방을 주도한 정부’로 공식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소련 등 연합국은 기존에는 임시정부를 비공식 조직으로 다뤘지만, 실질적인 군사 활동이 있었다면 해방 이후 협상 구조에서 임정이 주요 주체로 떠올랐을 것입니다.
2️⃣ 건국서사 변화
지금의 대한민국 건국 서사는 1948년 이승만 정부 출범 이후부터 본격화됩니다.
하지만 광복군이 조국 땅을 밟고 전투를 벌였다면, 대한민국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 → 1945년 무장독립 성공 → 정통 정부 계승이라는 서사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즉, “선물로 받은 광복”이 아닌 “우리가 쟁취한 독립”이 되었겠죠.
3️⃣ 남북한 정치 지형 변화
이 작전은 북한 지역에도 투입될 예정이었습니다.
만약 광복군이 평안도나 함경도에 먼저 진입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면, 소련의 영향력과 김일성 중심의 북한 정권 형성에 제동이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 왜 결국 실행되지 못했을까?
🔸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 8월 8일 소련의 대일 참전
- 8월 15일 일본 무조건 항복 선언
즉, 광복군과 OSS가 투입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렸습니다.
🔸 훈련 및 준비 부족
작전이 워낙 급박하게 준비되다 보니, 모든 대원이 충분한 훈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전 투입에는 시간적 제약이 컸습니다.
📣 당시 조선 민중의 반응은 어땠을까?
조선 민중은 총동원령, 공출, 징병제, 강제노역 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민심이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고,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졌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광복군이 무장 진입했다”는 소식이 퍼졌다면, 엄청난 민중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식인·학생·노동자들이 광복군과 함께 무장봉기를 벌였을 수도 있습니다.
🎯 역사적 함의
항목 | 의미 |
독립운동의 완성 | 총칼로 해방을 쟁취하는 독립운동 서사 완성 |
정통성 확보 | 임시정부와 광복군 중심의 정부 수립 가능 |
현대사 인식 변화 | “누가 나라를 세웠는가”에 대한 국민적 인식 변화 |
건군 역사 재정립 |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명확히 광복군에서 시작되었을 것 |
📝 마무리하며
광복군 국내진공작전은 실패한 작전이 아닙니다.
실행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우리가 독립을 위해 어디까지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작전이 실행되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른 자부심과 서사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광복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싸운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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