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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그리고 GoodFellas

150년 전 공중화장실 유적 발굴(경복궁)

by 굿펠라스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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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공중화장실 유적 발굴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북궁에서 약 15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화장실 유적을 발굴했다고 지난 7월 밝힌바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지금과 같은 현대식 정화조 구조를 갖고 있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150년전-경북궁-정화시설
150년전 경복궁 정화시설(출처 : 문화재청)


 정화시설을 갖춘 화장실 유구는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고려 말 양주 회암사 유적에서도 나온 적이 있지만, 이들 유적은 출수구만 있거나 입출수구가 모두 없는 형태를 하고 있어서 현재식 정화조 구조와는 다른것이었습니다. 

 


경복궁 화장실 유적 내용

 

 연구소는 1888 ~ 1890년에 전각 위치를 그린 '경복궁배치도', 1904년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궁궐지' 등의 문헌과 토양에서 검출된 기생충 알, 오이. 가지. 들깨씨앗을 근거로 석조 유적을 화장실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어 고종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와 목탄. 소뼈의 연대 측정 결과를 토대로 해당 화장실이 1868년 만들어져 약 20년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복궁 정화시설 전경(출처 : 문화재청)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는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로,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마감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해 있습니다.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1.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 2.분뇨 발효와 침전 -> 3. 오수와 정화수 외부 배출)와 유사한 구조라고 합니다. 

 

 


하루에 몇명이나 사용했을까?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의 규모는 4~5칸 정도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주로 동궁 권역의 하급관리, 군사나 궁녀 등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을 따져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정화시설 조사후 입단면도(출처 : 문화재청)

 


 정말 먼 옛날에 지어졌던 건물들만 봐도, 어떻게 지어졌을까 신기한데, 이런 정화시설은 더더욱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한 나라의 문화발전을 보려면 화장실을 보면 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발전속도가 빠른편일까요? 1800년대 중반, 150년전 조선시대였던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는것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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