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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그리고 GoodFellas

'3.1절'의 유래. 3월 1일에는 무슨일이?

by 굿펠라스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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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3월1일)이란?

 

: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

 


 1910년은 '경술국치'의 해이다. 당해 8월 29일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는 국권을 상실하였다. (경술국치는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이다.)

 

 일제는 이 시기 우리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우리역사와 말을 못 배우게 총과 칼로 지배를 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억압받고 있을때 세계는 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세계가 두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했었는데, 이 전쟁이 끝이 난 상황이었다. 이 전쟁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하였는데,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으로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전쟁을 수습하며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다. ('민족자결주의'란 모든 민족은 그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 민족자결주의는 강대국에게 지배받던 나라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독립운동의 불씨가 시작된 곳은 일본 도쿄였다. 1919년 2월 8일 일본인들에게 차별받던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2.8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큰 자극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는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죽음의 이유가 일제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이틀 앞두고 불교, 기독교, 천도교 대표 33인은 모여서 독립 운동 날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 때 3월 1일에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종로 태화관으로 모임장소를 옮겼다. 여기에서 한용운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그 후, 스스로 일본 경찰에 신고해 잡혀갔다. 

 

 

 같은 시각, 수천명이 모여있던 탑골공원에서는 민족대표들이 오지 않자, 학생 대표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사람들은 품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 6개 도시의 만세시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미주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시위횟수는 1,692건 참가자는 약 100만명, 사망은 약 1,000명
(국사편찬위원회의 발표)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3.1 운동은 독립을 향한 우리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가 광복될때까지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3.1절

'몽당오늘'의 영상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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