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독립선언이란?
“모든 조선 청년 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선언한다.”
— 『2.8 독립선언서』 중에서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 600여 명이 조국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입니다.
이날, 젊은 유학생들은 조선의 자유와 자주를 되찾기 위해 일본의 심장부에서 일제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 선언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조선 청년들이 세계에 독립의 정당성을 알린 공식적 외침이었습니다.

🌍 배경 — ‘민족자결주의’의 바람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른바 민족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 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승전국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원칙이었지만,
패전국 일본의 지배를 받던 조선 유학생들은 그 말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도 주권을 가진 민족”이라는 신념으로 행동을 결심했습니다.
🕊️ 2월 8일, 도쿄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 에 조선 유학생 600여 명이 모였습니다.
표면상으로는 ‘학우회 총회’였지만,
이들은 곧 회의 내용을 바꾸어 ‘조선청년독립단대회’ 를 열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조선독립만세” 를 외쳤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곧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 경찰은 회의장에 난입해 60여 명의 학생을 체포하고 강제로 해산시켰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4일 뒤, 그들은 다시 도쿄 히비야 공원에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고,
이후 2월 12일과 28일에도 두 차례에 걸쳐 가두행진을 이어갔습니다.
✊ 조선청년독립단의 결단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단체는 바로 조선청년독립단입니다.
그들은 11명의 실행위원을 선출하고,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일본 각계와 외국 공사관, 조선총독부, 신문사 등에 전달했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름과 신분을 숨기지 않고 세계에 독립의 정당성을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정의와 자유를 향한 민족의 염원을 대신하여,
세계 앞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다.”
🔥 2.8 독립선언 → 3.1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쿄에서 울려 퍼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은
곧 1919년 3월 1일 서울과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 13일) 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근대 민주정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 2.8 독립선언의 역사적 의의
- 조선 청년 세대의 자각과 용기
-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자주독립 선언
-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직접적 계기
- 국제사회에 조선의 독립 의지 전달
2.8 독립선언은 청년들이 주도한 최초의 국제적 독립선언으로 평가됩니다.
🕯️ 마무리하며
2.8 독립선언은 조선의 청년들이
무력보다 정의와 이성, 용기와 신념으로 맞섰던 역사입니다.
그들의 외침은 단 한 줄의 선언으로 요약됩니다.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날의 함성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청년 정신과 민주주의의 본질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