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가 남긴 교훈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남의 이야기일까? 

1980년대 중반, 일본은 명실상부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일본이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죠. 하지만 1985년 9월, 미국에서 체결된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일본 경제는 전에 없던 버블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과연 플라자 합의는 무엇이었으며, 이후 일본 경제는 어떻게 버블을 쌓고 터뜨리게 된 것일까요?

현재,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G5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회동의 목적은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강제로 올려 달러 가치를 내리고,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① 미국의 ‘초강수’ 대응

당시 일본의 수출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우수한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일본 제품들은 미국 시장을 휩쓸었죠. 미국은 1960년대부터 일본산 섬유, 철강, 전자제품, 자동차, 반도체 등에 대해 쿼터제 도입이나 덤핑 관세 부과 등으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개별 품목에 대한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아예 수출의 근간이 되는 ‘환율 자체’를 강제로 조절하려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② 20분 만에 끝난 합의

이 역사적인 합의는 불과 20여 분 만에 끝났다고 전해집니다. 합의문에는 ‘미 달러화 가치를 내릴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고,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통화 정책을 공조한다’고만 명시되어 특별한 이행 사항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G5의 합의라는 무게감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2. ‘엔고’의 그림자: 일본 수출 경쟁력 약화와 산업 구조 재편

플라자 합의의 결과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습니다.

합의 직전 1달러당 240엔대였던 환율은 불과 3개월 만에 200엔대로 20% 절상되었고, 합의 3년 후에는 1달러당 130엔대로 무려 85%가 절상되었습니다.

단 3년 만에 엔화 가치가 약 2배 가까이 폭등한 것입니다.

① 수출 기업들의 비명

엔고 현상은 일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급격히 떨어뜨렸습니다.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팔 수 있는 한국, 대만, 태국 등의 주변국들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본토에서 생산하여 수출하는 것은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②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확산

이에 일본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일본에서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기 위함이었죠. 이는 ‘오프쇼어링’이라는 업무 위탁 형태로 활발하게 진행되며 일본 내 신규 설비 투자를 정체시키고 수출품 생산 감소를 야기했습니다. 


③ ‘엔고 불황’의 닥침과 경기 부양 압력

플라자 합의 1년 후인 1986년, 일본 경제에는 ‘엔고 불황’이 닥쳤습니다. 환율이 1달러당 160엔대에 접어들자 수출 기업과 정부, 정치권, 언론에서 엔고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며 일본은행에 강력하게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에 미국도 일본 정부에 내수 확대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3. 경기 부양을 위한 극단적인 처방 :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

일본은행은 시장의 요구와 미국의 압박에 따라 경기 부양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단행합니다. 1986년 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무려 5차례에 걸쳐 금리를 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2.5%까지 인하했습니다. 여기에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1985년부터 1987년 5월까지 6조 엔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풀었습니다.

① 유동성 확대와 자산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

이러한 적극적인 대처 덕분에 ‘엔고 불황’은 1986년 1년여 만에 막을 내리고, 1987년 봄부터 일본 경제는 회복세로 접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우리나라가 저금리와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했던 상황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엔고 상황에서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 이전이 트렌드였기에 기업들의 설비 투자 의욕은 여전히 약했습니다.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은 기업의 생산 설비 투자 대신, 대규모 재정 확대와 사상 최저 금리로 인해 갈 곳을 잃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4. 유동성의 맹습 : 부동산과 주가 폭등의 시대

우리나라의 2020~2021년 상황과 매우 흡사하게, 일본의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풀려있던 돈들은 고스란히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부동산 가격

수요가 넘치자 일본의 땅값은 급등했고, 기업이 보유한 땅들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기업에 대한 평가 가치도 덩달아 상승했습니다.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었죠. 

② 주식 시장의 광란

기업의 주가는 이러한 부동산 가치 상승을 배경으로 폭등했습니다. 기업들은 치솟은 주가를 배경으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저비용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다시 수익률이 좋은 주식이나 부동산에 재투자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③ LTV 120%의 위험한 대출

당시 일본 은행들은 부동산 상승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무려 12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집값 1억 원짜리 주택에 1억 2천만 원을 빌려주는 식이었죠.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대출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일본의 부동산 가격과 주가는 결국 1989년부터 조금씩 버블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불황의 서막이었습니다.

① 뒤늦은 규제와 금리 인상

  • 초기 규제: 일본 정부는 1985년 7월 금융기관에 부동산 대출 자제를 통지하고, 1987년 8월에는 감시 구역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규제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과열된 투기 심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급격한 금리 인상: 결국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을 단행합니다. 1989년 5월, 기준금리를 2.5%에서 3.25%로 인상했고, 1990년 8월에는 6%까지, 1년 3개월 동안 5차례에 걸쳐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습니다.
  • 대출 총량 규제: 금리 인상만으로는 과열을 잡지 못하자, 1990년 3월 일본 대장성(기획재정부와 유사)은 부동산 대출 억제를 목표로 하는 ‘대출 총량 규제’를 발표합니다. 이는 부동산 대출 증가율을 총 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하는 조치였고, 대출 총량 규제 도입과 함께 부동산 대출은 빠르게 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② 악순환의 시작: 자산 가격 폭락과 금융 위기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율 상승과 대출 총량 규제에 따른 대출 불가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급격한 자산 가격 하락을 초래했습니다.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부실 채권이 늘어나면서 은행들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은 빌려줬던 돈을 급히 회수했고, 사람들은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였습니다. 소비 위축은 기업들의 도산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일본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본의 1980년대 플라자 합의 이후 사례는 현재 한국 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물론 시대와 주변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 존재합니다.

① 유동성 공급과 자산 가격 상승의 공식

핵심 교훈은 ‘저금리와 유동성이 풀리게 되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자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입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와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현상은 일본의 과거와 겹쳐 보입니다.

②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는 진리

분명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 속에는 가치에 비해 고평가된 자산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투자에 있어서는 항상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 선별하여 가치 있는 자산을 선택한다면 부를 이룰 수 있겠지만, 버블이 낀 자산을 잘못 선택한다면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③ 한국 경제의 숙제

  • 금리 인상: 미국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가계 부채 관리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대출 규제: 부동산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할지, 아니면 완화할지에 대한 정책 방향도 중요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 정부 정책: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발표될 경제 정책의 방향성 또한 중요합니다. 어떠한 정책을 펼칠 것인지 주목하고, 현명한 투표와 판단으로 스스로의 자산을 지켜야 합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겪은 경제 버블과 그 여파는 탐욕과 불안정성 속에서 반복될 수 있는 인간과 시장의 본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10년’이나 ’30년’이 찾아오지 않으려면, 과거의 교훈을 거울 삼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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