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순천 사건과 제주 4.3 사건

🔴 여수. 순천 사건 — 제주 4.3 사건의 전초전

여수. 순천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 연대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제주 4.3 사건 진압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이승만 정부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와 다양한 군사 장비를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인 일입니다.

여수. 순천 사건의 전개

1948년 10월 21일, 여수 순천 지역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군대박격포, 장갑차, 경비정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습니다. 진압군의 무차별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2,000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여수10월 27일, 순천10월 23일에 군경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 영화 ‘동백’과 여수. 순천 사건

영화 ‘동백’여수. 순천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은 노인가해자의 딸이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여수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었으며, 극장에서 상영 되기도 했습니다.

동백

🌋 제주 4.3 사건 — 이념 대립과 희생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시작된 소요사태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로, 당시 제주도민 약 3만 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무려 10%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이 사건은 좌우 이념 대립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대한 반발로 인해 발생했으며,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전역에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 제주 4.3 사건의 배경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정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남한 단독 선거를 진행했으나, 제주 선거구에서만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를 도전으로 간주한 정부는 제주도 전체에 강경한 진압 작전을 펼쳤습니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에 내려진 포고문에서는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들은 무차별적인 폭력희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의 목소리

제주 4.3 사건여수. 순천 사건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주 4.3 사건좌우 이념 대립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진상 규명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많은 제주도민들이 불법적인 정치 탄압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과 희생자 지원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들의 지원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정리

여수. 순천 사건제주 4.3 사건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이념 대립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제주 4.3 사건은 그 당시의 정치적 탄압국민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진상 규명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동백’을 통해 여수. 순천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특별법 통과 이후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한층 더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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