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본 아프리카, ‘검은 대륙’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Black Continent)’이라고 부른 것은 아프리카가 어둡거나 미개해서가 아니라, 15세기 이전까지 속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지중해를 통해 북아프리카와는 교류했지만, 그 남쪽으로 가려면 사하라 사막을 넘어야 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위험이 너무 커서 남부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이런 이유로 ‘검은 대륙’이라는 표현이 생겨났습니다.

아프리카의 번영했던 고대 왕국들
아프리카에는 유럽이 탐험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찬란한 왕국과 교역 네트워크가 존재했습니다.
🟡 가나 왕국 (6~13세기)
- 황금 해안이라 불릴 만큼 금 거래가 활발
-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과의 금·소금 교역을 통해 번성
- 11세기 말 이슬람 세력에 교역 주도권을 빼앗기고 쇠퇴
🟤 말리 왕국 (13~15세기)
- 순디아타 케이타가 가나 왕국을 정복하고 말리를 통일
- 전성기: 만사 무사 통치 시기
- 사하라 횡단 교역을 장악하고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
- 만사 무사 사후 분열로 쇠퇴
⚫ 송하이 왕국 (15~16세기)
- 손니 알리 왕이 팀북투를 정복, 북서부 아프리카 지배
- 이슬람과 전통 신앙 공존
- 16세기 후반, 화약무기로 무장한 모로코군의 침입으로 몰락
이 시기 아프리카는 금·소금 교역의 중심지였고, 당시 유럽보다도 부유한 지역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검은 황금’: 노예무역의 비극
유럽 탐험가들이 서아프리카에 도착한 목적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곧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검은 황금(Black Gold)’이라 부르며 대규모 노예무역을 시작합니다.
- 1500~1850년 사이, 약 1,3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유럽 노예상인들에게 붙잡혀 식민지로 강제 이송
- 대부분 젊고 건강한 남성이 대상이었고, 노예선 안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음
- 상품가치가 떨어진 사람들은 항해 중 바다에 버려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이 잔혹한 노예무역은 수 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아프리카 사회와 문명의 발전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제국의 침탈과 ‘검은 대륙’의 이미지
유럽 열강들은 19세기 제국주의 확장 시기에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 부르며 미개하고 개발되지 않은 땅이라는 인식을 퍼뜨렸습니다.
이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후 오랫동안 편견과 차별의 언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프리카는 오랜 역사, 찬란한 문화, 복잡한 교역망을 가진 대륙이었고, ‘검은 대륙’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진실을 감춘 유럽 중심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